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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들은 것 (11)
알퐁
잘 쓰던 iMessage가 전화기를 iphone 7에서 iphon 6 plus로 바꾼 후 갑자기 되지 않아서 구글신께서 또 애플님께서 알려 주신 대로 충실히 따라했으나 여전히 안 되어서 애플님께서 마지막으로 하라고 하신 채팅 도움을 청했다. 누군가 친근하게 내 이름을 부르며 (appleID로 알 수 있으므로) 말을 걸고 이렇게 저렇게 했니 사근사근 문자로 묻기에 다 했는데 안 되더라 했더니, 내 전화기기 모델을 물어도 되겠냐고. 아니 할 수는 없잖아. 아이폰 7에서 6 플러스로 옮긴다니까 6 플러스! 빈티지! 그런다 ㅜㅜ 7도 빈티지니? 물으니 아니 그건 그 정도는 아니고 한다 ㅎㅎ 6는 업뎃도 안 되어서 7으로 ios 업뎃을 하라고 해서 시키는 대로 하면서 너 사람이니 물으니 사람 맞단다 ㅋㅋ 어디야 ..
전에 엄마 계실 때 크리스마스 전날밤이면 가톨릭 신자였던 엄마를 작은 성당으로 모시고 가곤 했다. 쥐오줌이 얼룩덜룩 보이는 낮은 천장 아래 몇 안 되는 신도들이 주욱 앉아 있고 표정없는 신부는 하얀 나이롱 신부복을 입고 라틴말로 미사를 이끌었다. 라틴인지 로만인지 ... 난 신도가 아닌데도 알아듣지 못하는 낮고 높낮이가 일정한 말에 주술에 걸리듯 최면이 걸리듯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최근에 위대하신 구글신께서 비슷한 경험을 주셨다. 경배하라~ https://www.youtube.com/watch?v=iRZ98HX1MO8&list=OLAK5uy_nNuG_DxxyKXB4Qi7_UDF6qf-WViMBfAC4&index=1 https://www.youtube.com/watch?v=XX1ResoIGc8&list=O..

선생님인 젊은 백인 여성한테서 들은 흥미로운 이야기. 보기에는 20대 초반일 거 같지만 생각보다 나이가 있어서 20대 후반인 따라서 아이들을 가르친 지 몇 년 되는 경험이 많다고 하기 좀 뭐하나 완전 초보는 아닌 고등학교 선생님. 그 선생님이 근무하는 학교는 부촌과 거리가 먼 공립학교로 여러 인종들이 섞여 있는데 아시안과 섬출신들이 많은 곳. 그런데 이제까지 자기한테 존경을 보이지 않고 선을 넘은 학생이 셋인데 다 백인 남학생이었단다. 왜일까, 나이에 상관없이 자기 주장을 펼치는 백인 가정 문화 때문인가 하니 그것보다는 백인 + 남성은 자기들이 "entitlement (응당 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고 믿기 때문일 거라고 말한다. 오! 긴 말이 필요없이 확 알아듣겠다.

한 사람이 안락사를 지켜본 이야기를 해줬다. 자기 이웃 할머니가 오랫동안 치료법도 없고 나을 가능성도 없이 고통에 시달리다가 지난 달 안락사가 법으로 허용되자 신청해서 당신 생일날 친지와 함께 촛불도 끄고 생일 음식도 먹고 모인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평화롭게 떠났단다. 자기 십대 딸에게 할머니처럼 잘해 주었기에 딸과 함께 가서 지켜보았는데 무척 인상깊었다고 들떠서 이야기를 했다. 인간성을 지킬 수 있는 죽음이라고 무척 긍정적이었다. 첫 느낌은 얼마나 힘들었으면 죽게 해달라고 했을까 하는 안쓰러움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진심으로 죽고 싶었을까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법적인 과정이 무척 까다롭다는데 그걸 다 지나서 허락 받았음은 그만큼 절실하게 원했다는 것. 그 다음 생각은 당연히 나라면 ..
어릴 때 난 참 게을렀다. 설겆이 하라고 시키면 미루고 미루다 더이상 피할 수 없을 때 간신히 하고 빨래하기 싫어서 같은 옷을 계속 입고, 청소하기 싫어서 모든 것을 벽에 걸고 사는 식이었다. 엄마는 자꾸 시키면서도 그런 날 보고 "게으르게 사는 것도 괜찮아. 시집가면 질리게 할 테니 쉬어라" 하곤 했다. 그러면서도 엄마는 간교했다. 물론 당신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결과가 그렇다. 늘 내게 "내가 우리 알퐁 때문에 산다. 내가 너무 힘이 들어서 이걸 어쩌나 하면 네가 뿅 나타나서 해줬어.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랬어" 했다. 그렇다. 내가 설겆이를 한 것은 더러운 게 싫어서가 아니고 힘든 엄마가 할까 봐였다. 좀더 나이가 들어 그때 엄마만큼 나이가 들었을 때 졸지에 딸 셋이 한꺼번에 생겼을 때 아이들을 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