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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알퐁 2021. 5. 2. 13:12

윤여정님이 아카데미상 수상을 받은 이후 미나리에 대한 한국 반응을 들으며 이민자인 내가 느낀 바 몇 가지.

1. 중풍 이후 할머니의 급격한 성격 변화

뇌 어느 영역이 상해를 입었느냐에 따라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영화 등장인물 성격상 일관성이 없는 것으로 분석하는 얘기를 들었다. 글쎄 ...?

 

2. 여자 주인공의 연기에 대한 칭찬

내가 한국 정서에 대한 감을 잃었다고 느낄 때가 바로 이럴 때이다. 모두들 여주인공 연기를 칭찬하던데, 난 영화에서 색감, 카메라 거리, 대사, 인물 성격, 연기, 진행 속도, 거의 모든 부분이 좋았는데, 딱 하나 이상하고 현실감이 없다고 느낀 것이 여주인공이었다. 왜 그 여자는 늘 심각하고 화가 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처음 꼴에 유학이라고 쉬러왔을 때 주로 만난 사람들이 이제 갓 결혼한 애가 없다가 나중에 현지에서 낳은 젊은 부부들이었다.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 영주권을 받고 온 은퇴한 이민자들과 달리 어떻게든 궁둥이 붙이고 살아서 영주권 하나 따볼까 전전긍긍하는 가난한 젊은이들이었다. 우리는 기본 임금에도 미치지 않는 돈을 받으며 한국 가게나 식당을 하루에 두세 곳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일하거나 밤에 영업 끝난 슈퍼나 학교 청소를 하며 생계비를 벌었다. 싼 선데이마켓에서 채소를 사서 얼려 놓고 야금야금 먹어서 돈을 얼마를 절약했느니, 슈퍼에서 닭똥집을 사면 싼 가격에 배불리 철분 섭취를 할 수 있다느니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자 연장때가 되면 얼굴들이 흙빛으로 바뀌어서 누구나 아 그때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신분이 불안정했고, 영주권만 받으면 뭐든지 해결될 것 같았다. 그 와중에 친구라고 믿었던 같은 한국사람이 영주권을 해결해 준다며 돈을 받고 여권을 가져다가 팔았는지 어쨌는지 소식이 감감해서 난리가 나는 경우도 많이 봤다. 그래서 대부분 기분들이 비자연장 기간에 맞춰 무척 오르락내리락했다. 하지만 내내 내리막은 아니었고 나름 웃으며 놀기도 했다. 

영화 미나리에서는 그 식구들이 오똑하니 떨어진 곳에 고립되어 있어서 친구들과 웃을 일은 없었겠고 특히 부부 갈등 때문에 더 그랬겠지만 그래도 사람이 사는데 특히 아이들이 들판에서 뛰는데 어떻게 엄마가 늘 그리 화를 낼 수 있을까? 병적인 우울증이라면 모를까 ... 그런데 또 일은 악착같이 하는 걸 보면 우울증이라고 해도 그렇게 심하지는 않은 듯? 난 그 성격이 현실로 느껴지지 않았다.

 

3. 현지에 적응 잘하는 아내, 한국식으로 번듯한 일하고 싶고 제 주장대로 밀어부치는 남편

많이 봤다. 뉴질랜드 작은 영화 쏘세지 먹기 (eating sausage)가 잘 그리고 있다. 

https://www.nzonscreen.com/title/eating-sausage-2004

 

Eating Sausage | Short Film | NZ On Screen

Eating Sausage - This short film follows a freshly-arrived Korean immigrant, trapped in suburban Auckland while her husband Kim works. Su Jung befriends her neighbours, who take her to their weekly swimming lessons, where she finds release in the water. Bu

www.nzonscreen.com

 

4. 왜 미나리 

어릴 때 이민 온 사람이 왜 미나리일까 이해하기 힘들다 했다. 이곳에서는 미나리를 보기 힘드니 그럴거다.

내 생각에는 미나리만큼 이민자들을 잘 상징하는 풀이 있을까 참 절묘하다 했다. 흔히들 이민자들이 아무 데에서나 튼튼히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잡초에 견주지만, 사실 그렇게 튼튼히 뿌리를 내리고 사는 경우는 드물다. 뿌리를 내렸다 잠시 착각할 때도 간혹 있지만 늘 건들건들 발끝, 뿌리끝만 땅에 닿고 있는 불안정한 느낌이 뒤통수에 달라붙어 있다. 미나리는 땅속 깊이 뿌리내리는 큰 밑둥을 가진 나무와 반대이다. 물 반 진흙 반인 곳에서 흔들흔들 자라고 냄새도 독(?)하다. 언제라도 뽑힐 수 있는 냄새나는 풀로 보일 수도 있다. 딱 이민자와 같다. 

남아공에서 온 이민자들은 영어가 모국어이므로 일도 잘 구하고 영주권도 빨리 나오고 아시안 눈으로 보면 성공한 이민자들이다. 그런데도 내가 치료한 남아공 사람들은 주병증이 무엇이든간에 배경에 불안증과 불면증을 달고 살고 있었다. 모국에서 벌어진 끔찍한 상황들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릴 때 이민와서 남아공 흑백갈등과 폭력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이들도 비슷했다. 아무리 영어를 써도 그들 또한 다름을 날마다 인식당하며 살고 있기에 난 그들도 미나리 같은 이민자 무의식에 지배받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런저런 면에서 미나리는 보면서 마음이 좀 힘들었지만 정말 잘 만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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